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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칼럼

[민경철의 법률톡톡] 지하철 성추행 재판, 물증은 왜 진술 앞에 무너졌던가

민경철센터 조회 4

 

 

    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성범죄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졌고, 객관적 증거보다 피해자 진술을 우선시하는 판례가 잇따랐다. 2024년 이후에는 다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증거법의 기본 원칙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2026년 현재, 과거보다는 다소 균형을 되찾았지만 전원합의체 판결 없이 상반된 기조가 여전히 공존하는 가운데, 결국 어떤 법관, 어떤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람의 진술은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증거가 된다. 하지만 기억에 의존하는 진술은 본질적으로 착오와 왜곡, 허위 가능성을 내포한다. 반면 물증은 기억이나 인식과 별개로 존재하는 객관적 증거이므로 신빙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술이 아무리 일관되어도 객관적으로 확인된 정황과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신빙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진술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기에, 별도의 신빙성 판단을 거쳐야 한다. 일관성, 합리성, 객관성, 구체성, 진술 동기와 이해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믿을만한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명력 평가는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겨져 있지만, 자유심증주의는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허용하는 제도가 아니며, 반드시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해야 하고, 유죄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신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증거법의 기본 원칙을 사실상 무력화한 판결이 있었다. 이른바 성인지감수성 판결의 하나로, 피해자 진술에 절대적인 증명력을 인정한 결과였다.

 

피고인은 2019. 1. 3. 21:56경, 전동차 안에서 피해자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스타킹과 날개형 생리대를 젖힌 뒤 손가락으로 약 5분 동안 피해자의 성기를 추행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스타킹을 찢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한 행위가 실제 가능했는지, 피해자가 약 5분 동안 이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는지 등은 상식적으로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 사건에서 추행을 입증하는 직접증거는 피해자의 진술뿐이었다. 원심은 스타킹과 날개형 생리대의 구조, 피고인과 피해자의 신체 조건과 자세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주장하는 방식의 추행은 물리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았다.

 

또한 피해자의 진술은 CCTV 영상에서 확인되는 객관적 정황과 일부 배치되었고, 추행에 사용된 손, 추행 시작 시점, 코트 개방 여부 등 핵심 내용에 대해서 자필 진술서, 경찰 진술, 법정 증언이 여러 번 번복되거나 추가되었다.

 

게다가 음부에 타인의 손이 들어왔음에도 상당 시간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진술, 약 5분 동안 추행을 당하고도 마지막 몇 초 전에야 알아차렸다는 진술, 극심한 성적 침해를 당하고도 곧바로 제지하지 않았다는 진술 역시 경험칙상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원심은 이러한 객관적 사정을 토대로 피해자가 접촉으로 인한 불쾌감을 더욱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피해 사실을 과장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고, 결국 무죄를 선고하였다.(의정부지법 2020. 10. 22. 선고 2019노2507 판결)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경찰 조사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진술의 일부가 달라질 수도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진술이 추가·변경되는 것은 기억의 회복 과정에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스타킹과 생리대의 구조상 피해자가 주장한 방식의 추행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피고인과 피해자의 키 차이나 자세를 고려한다 할지라도, 추행이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피해자가 진술한 추행 시간 역시 주관적인 체감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문제는 결론 자체보다 그에 이르는 논리였다. 대법원은 원심이 제기한 여러 의문을 논리적으로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반드시 납득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별다른 근거를 대지 않고 단순히 원심의 판시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는 표현만 반복해서 소극적으로 부정하는데 그쳤다. 

 

또한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타당치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을 제시하는데, 형사재판에서 유죄는 ‘가능성’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게다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의심스러운 상태’인 경우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함에도, 오히려 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물리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고 객관적 증거(CCTV)와 배치되는 등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 피해자 진술만을 근거로 원심을 파기하였다.(대법원 2021. 3. 11. 선고 2020도15259 판결)

 

그럼에도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 정작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난 것은 대법원이 아닌가 싶다.

 

자유심증주의는 법관에게 마음대로 판단할 자유를 부여하는 제도가 아니라, 논리와 경험칙이라는 한계 내에서만 사실을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원칙이다. 그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무죄추정과 증거재판주의 역시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출처 – 핀포인트뉴스 오피니언 전문가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