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법률톡톡] 무고죄의 고의에 대한 오해
민경철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준강간 고소인 중에는 상대방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오히려 무고죄로 역고소되어 기소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 가장 많이 나오는 주장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 신고했을 뿐인데 어떻게 무고죄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아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무고의 고의가 부정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무고죄에서 말하는 ‘고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이다.
“준강간이 무혐의가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무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무고죄는 신고 내용이 허위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범죄이므로, 단순히 성범죄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고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준강간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간음한 경우 성립한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진술뿐 아니라 CCTV, 카드 사용 내역, 이동 동선, 목격자 진술, 통화기록 등 객관적인 정황을 종합하여 당시 피해자의 상태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피해자는 술을 마시다 의식을 잃었고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CCTV에 스스로 걸어서 모텔에 들어가고 계단을 오르며 상대방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촬영되어 있고, 편의점 직원이나 모텔 직원 역시 정상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면, 수사기관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준강간 혐의는 무혐의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상대방이 무고죄로 고소하면, 과연 “나는 정말 기억이 없었다”는 말만으로 무고죄의 고의를 부정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사실과, 기억나지 않는 부분까지 범죄사실로 단정하여 형사처벌을 구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무고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고 내용이 허위라는 점뿐 아니라 신고 당시의 고의이다. 그런데 고의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직접 확인할 수 없다. 결국 수사기관과 법원은 객관적인 정황사실을 통해 신고자의 내심을 추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억이 없다”, “의식을 잃었다”, “동의한 적이 없다”는 진술 역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객관적 정황에 부합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CCTV와 목격자 진술, 통화 내용, 메시지, 사건 직후의 행동 등을 종합하였을 때 오히려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행동이 확인된다면, 신고자가 자신의 신고 내용이 허위일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무고죄의 범의는 반드시 확정적 고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6. 5. 25. 선고 2005도4642 판결) 즉 신고자가 신고 내용이 진실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하였다면 무고죄는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고자가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비추어 신고 내용이 허위이거나 적어도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외면한 채 자신의 주장만을 믿고 신고한 경우 무고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것이다.(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6도4255 판결)
즉, 자신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자신의 추측으로 채워 상대방을 준강간범으로 단정하여 고소하였다면, 허위 가능성을 인식한 상태에서의 신고로 평가될 수 있고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무고죄에서 문제되는 것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사실인 것처럼 단정하여 신고한 사람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말 그렇게 믿었다”는 신고자의 진술이 아니라, 객관적 사정에 비추어 그렇게 믿을 수 있었는지이다. 결국 판단 기준은 신고자의 주관적인 주장 자체가 아니라, 신고 당시 존재하였던 객관적 증거와 여러 정황에 비추어 신고자가 허위 가능성을 인식하였는지 여부이다.
형사사건은 언제나 객관적 증거를 중심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준강간 사건도, 그 이후의 무고 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진술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고의와 허위성을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 그것이 형사법이 요구하는 기본 원칙이다.
출처 – 핀포인트뉴스 오피니언 전문가 기고